흠... 어디서부터 글을 시작해야 할까?
시간순으로 얘기해 볼까?
이제 우리 봉봉이가 태어난 지 80일이 넘어가고 있다. 2개월을 지나 3개월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빠른 아이들은 4개월부터 이유식을 시작한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이유식을 어떻게 먹이나 궁금해서 일단 독일에 사는 한국 엄마들의 블로그를 검색했다.
여기까지는 사담이다.
그러다가 어느 분의 블로그에 도달하게 되었다. 첫 돌이 지난 아기를 독일에서 키우는 분의 블로그였다. 글이 재미있었다. 빠져들었다. 문득 계속 스크롤을 내리고 다른 포스팅을 클릭해서 읽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문장 자체가 뭉글하니 부드러웠고 끊김없이 읽혔으며, 미사여구나 수식어구를 상황에 맞게 매끄럽게 아주 잘 사용한 문장들로 이루어진 글이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분은 대체 뭐하시는 분일까? 블로그를 좀 더 열심히 살펴보니, 글 쓰는 연습을 따로 하고 계셨다. 내가 베껴쓰기한 책도 읽으신 것 같고 토지도 읽고 계신 듯했다... 나 토지 필사를 해 보겠다고 e북을 사 놓고 어딘가 쳐박아 놓은 채 몇 년이 지났나...? 그리고 다른 포스팅을 계속 클릭하다가 독일어 B1 시험도 만점으로 통과하셨다는 글을 또 보았다.
거두절미하고 반성했다.
나는 번역을 하고 있긴 하지만 글 쓰는 걸, 그리고 외국어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다. 열심히 글을 써 보려고, 심지어 영어로도 써 보려고 블로그를 시작했지만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포스팅을 얼마나 미뤘던지... 미루다가 기억을 더듬어 급하게 쓰는 포스팅은 글을 고쳐 쓸 사이도 없이 냅다 쓴 사람의 동작으로 치면 그저 동분서주한 그런 글들뿐이다. 글을 게시하고서도 한 번 읽어보고 끝이다. 그나마 자부할 수 있는 건 맞춤법뿐... 그리고 난 작년 B1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물론 말하기 점수만 미달이긴 했지만, 그 시험에서 만점을 받을 정도면 잘하면 B2 시험도 통과할 만한 독일어 실력을 갖추고 계실 것이다. 출산하는 것도 병원 가는 것도 그렇게 큰 부담은 없으리라...
난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잖아.
라는 변명을 하고 싶지만, 아니 사실이기도 하다. 이렇게 또 자기합리화의 오류에 빠진다. '오류'라고 말로는 하지만 속으로는 '사실'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중적이다. 겸손하면서도 자만한다.
그동안 독일에 와서 어떻게 지냈는지 돌아보게 됐다.
첫 일 년은 적응하고 여행 다니느라 바빴다. 초반에는 집을 구하느라 고군분투... 좀 쉬나 싶었다가 여름 지나고 가을에 언니가 오게 되어서 같이 독일어 학원을 다녔다. 두 번째 해부터는 비자 때문에 똥줄 타는 한 해를 보냈다. 그 해 말에는 정말 최악이었지. 여기 체류하지 못하게 될까 봐 프라하에 갈 생각까지 했고, 실제로 남편이 프라하에 비자 신청까지 했었으니까. 그러다 귀인을 만나 독일에 체류하게 됐다. 그게 바로 2019년 2월이었고, 그 해 10월에 임신을 했다. 임신해서 정신이 없었다 치면 그 전에 8개월이나 둘이 지내면서 평안했던 기간이 있었다. 아, 아니다 그때도 프라하랑 뉘른베르크를 왔다갔다 하며 언니 식당 오픈을 도왔던 것 같다... 그 사이에 한국도 다녀오고... 10월에는 임신을 해서 그때부터 겁내 피곤해서 일도 제대로 못했지...
막상 돌아보니 나 되게 열심히 살았구나.
아, 결론이 또 왜 이렇게 났는지 모르겠는데 생각해 보니 이벤트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걸 다 블로그에 써 놨으면 책 한 권이 완성됐을 지경이군. 그치만 또 변명을 하자면 내가 일을 하지 않으면 생계 유지가 안 되기 때문에... 그래도 일적으로는 많은 발전을 이뤄냈다. 이제 이 업계에 뛰어든 지 8년이 다 되어 가고 있고, 프리랜서로 독립한 지는 6년이 다 되었다. 경력이 하나둘 쌓이면서 실력도 많이 늘었다. 이제 완벽하진 않아도 어떤 글이든 어느 정도의 품질은 낼 수 있다고 자신한다. 외국인 친구가 생기면서 영어 말하기 실력도 많이 늘었다. 그래, 지난 4년 동안 그런 성과면 됐어.
그럼 앞으로는?
후회나 반성보다는 그분의 블로그를 보고 자극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임신 기간을 지내고 아기를 낳고 80일 정도가 지나는 동안 일을 많이 줄였다. 줄일 수밖에 없었다. 원래는 3개월 지나고부터 다시 일 물량을 늘리는 노력을 할 생각이었지만 독일에는 엘턴겔트라는 좋은 제도가 있다. 엘턴겔트를 이번 주에 신청했는데,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받을 수 있다면 생계에 대한 부담을 덜고 일 말고 하고 싶었던 일, 블로그 포스팅을 하고 유튜브 영상을 만드는 일을 숙달될 때까지 조금 집중해서 해 보고 싶다. 그래도 간간히 하는 작업이 우선이 되겠지만 말이다.
지금이 기회일지도 모른다.
블로그 포스팅도, 유튜브 영상 촬영 및 편집도 일단 시작하고 숙달이 되면 소요되는 시간이 자연스레 파악이 될 것이고, 그러면 언제 투자를 할지 계획을 세울 수 있고, 주기적으로 업로드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1년간 아기도 잘 돌보면서 독일어 공부도하고 블로그도 유튜브도 꾸준히 하고 작업도 간간히 하면서 그렇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 해보자.
간간히 이렇게 덜 피곤한 날, 여유롭게 글도 써 보고 영상도 촬영하고 편집도 하고. 내 취미가 다 그런 것인데 어떡하겠나? 좀 바쁘게, 아니 좋은 말로 매일 알차게 그렇게 지내보자. (하지만 이 시국에 면역력 떨어지게 피곤하게 지내면 안 되겠지.) 그리고, 나에게 좋은 자극을 준 그 블로거 분께도 전할 수 있다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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