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생후 136일이 된 우리 봉봉이.
육아란, 첫 신혼 생활 때처럼 새로운 가족 구성원과 함께 부대끼며 즐겁게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가는 일인 것 같다. 다만, 남편은 말을 해서 같이 의견을 나눌 수 있지만 아기는 말을 못하고 이 세상이 처음이라 내가 적응시키는 대로 적응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그래서 가끔 엄마들은 착각(?)을 한다. 내가 아이를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있다고,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고. 열정 넘치는 우리네 민족 특성일지도 모르나, 나도 자꾸 매순간 그런 오류에 빠지곤 한다.
아이도 분명 의사가 있다. 싫고 좋음이 있다. 그것이 분명한 아이도 있고, 분명치 않은 아이도 있다. 어른이랑 똑같이 기질적인 차이인 것이다. 그 싫고 좋음에 얼마나 맞춰 줄지가 매순간 고민이지만, 이내 난 지고 만다. 많은 엄마들이 그럴 것이다. 그래서 처음엔 많이들 좌절하기도 하겠지.
처음에 봉봉이를 낳기 전에는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하기에 따라 아기를 따로 재울 수 있지 않을까? 밤에 잠만은 이전처럼 남편과 둘이 자면서 이런 저런 얘기도 자기 전에 도란도란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아기가 태어나고는 아기가 통잠을 자기 시작하면 다시 남편과 잘 수 있겠지... 그게 언제가 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매일 밤 봉봉이가 혼자 잘 자주기를 기도하면서 자장가를 부르기도 하고 토닥토닥해 주기도 하고 안아주기도 하고 그도 안 되면 쪽쪽이도 같이 물리면서 열심히 재웠던 것 같다. 처음부터 우리는 그렇게 다른 침대에 따로 잤다.
그날도 어김없이 새벽에 잠을 설치던 아기. 둘리는 봉봉이를 안아들어 내 옆에 눕혀 줬다. 봉봉이는 내 옆에 눕자마자 내 손을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바로 잠이 들었다. 그 이후로 매일 밤 우리 침대, 내 옆에는 둘리 대신 봉봉이가 잠을 자고 있다. 그 이후로 다음날 아침 비교적 개운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하루 일과를 그 전처럼까진 아니지만 나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힘도 생겼다. 여유롭게 아침도 먹을 수 있었다. 그게 너무 소중해서 그 뒤로 봉봉이를 자기 침대에 따로 재우지 않았다. 물론 우리가 자기 전까지 자는 저녁 잠은 본인 침대에서 재웠지만, 엄마랑 자는 게 적응이 되었는지, 저녁에도 자주 깨기 시작했다.
사실 매일은 아니지만 육퇴의 기쁨이 있었다. 그게 너무 달콤하여 매일 그렇게 지속되기를 바랐다. 육퇴의 기대가 커질수록 아기가 잘 자지 않거나 중간에 깨고 그러면 나도 모르게 짜증이 올라왔다. 아직 미성숙한 엄마인 것이다.
백일이 지나 봉봉이가 뒤집기 시작했다. 뒤집기의 기쁨도 잠시, 엄마빠 침대에서 꿀잠을 자는 봉봉이가 혹시 자다가 굴러 떨어질까 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물론 임신 때 샀던 ㄷ자로 생긴 아주 큰 베개 안에서 봉봉이는 잠을 잔다. '하지만 곧 그 턱도 넘을 만큼 힘이 세지겠지. 그렇다면 봉봉이는 어디서 자야 하나?' 다시 아기 침대에 재워야 할 것 같아서 어제는 밤새 아기를 본인 침대에서 재워봤다. 하지만 예상대로 쭉 자지 않았다. 마치 잠깐 잠에서 깨면 엄마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2~3시간마다 눈을 떠 나를 불렀다. 그때마다 우리 침대 밑에 자리한 봉봉이 침대로 가서 쪽쪽이를 물리고 자장가를 불러주는 일은 당연히 다음날 내 피로도에 지장을 주었다. 그렇게 계속 재우다보면 적응하고 언젠간 통잠을 잘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언제인가? 기약이 없다...
어떤 소아과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아기는 부모가 하는 대로 적응하게 되어 있으니 수면 교육을 부모 자신을 위해서라도 시키는 게 좋다고.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아이는 기다려주면 언젠간 해내는 것 같다. 부모의 역할은 지치지 않고 보채지 않고 기다려 주는 일인 것 같다. 그런데... 그러는 동안 내 생활은 누가 보장해 준단 말인가?
나는 집에 있는 엄마다. 그와 동시에 일하는 엄마다. 아이가 필요할 때 언제든 옆에 있을 수 있지만, 시간 분배와 컨디션 조절을 잘하지 못하면 일에 지장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밤은 중요하다.
그래서 결국 둘리와 상의 끝에 우리는 거실 한 켠에 우리를 위한 수면 공간을 마련했다. 우리 집은 안방, 부엌, 화장실, 매우 큰 거실(보통 방 두 개 크기), 그리고 맨 위층 다락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봉봉이가 태어나기 전 보통 잠은 안방에서 자고, 여가 시간이나 일하는 시간, 그리고 식사 시간 모두 이 거실에서 보냈다. 육퇴를 하고 여기서 남편과 한 번씩 술 잔을 기울이며 스트레스를 날리곤 했는데, 나는 나의 밤을 위해 그 꿀 같은 휴식을 살짝 아기에게 양보하기로 했다.
오늘이 그 첫 시도인데, 지금 11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각, 저녁 잠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자고 있다. 아무래도 역시 혼자 있는 것보다 엄마빠가 활동하면서 바시락거리는 소리가 잠에 덜 방해가 되나 보다. 아까 우린 여기서 영화까지 시청했다. 빨래를 널고 둘리가 동전을 정리하는 소리에는 비교적 반응하며 살짝 깨기도 했지만, 둘리와 대화를 나누거나 TV를 보거나 하는 소리에는 반응하지 않고 잘 자고 있다. 며칠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육퇴했다는 꿀맛 같은 기분은 다소 적게 들지만 할 일을 못할 정도는 아니니깐. 봉봉이가 거실에서 자게 되면 둘리도 나도 TV를 보며 시끄럽게 지내기보다 조금은 더 조용하게 할 수 있는 일, 가령 블로그를 쓰거나 책을 읽거나 조용히 대화를 하거나 하면서 마음의 양식을 쌓게 될지도 모르겠다. 시끄러운 기분으로 스트레스를 날리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조용하게 하루를 정리하고 대화하고 그러는 것도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봉봉이와 더 가까이 있으면서 그를 지켜보면서 점점 더 엄마가 되어 가는 날 느끼는 것도 뿌듯한 일이다. 결국 아기 입장에서도 엄마가 같이 따뜻하게 자주는 거니깐 정서에 도움이 될 것 같고, 그렇게 더 가까운 엄마가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왠지 자기 합리화 같지만, 내 밤을, 내 잠을 빼앗기지 않기 위함이 가장 큰 이유지만 나를 위한 것이 또 가족을 위한 일이고, 아기랑 같이 있어 주는 거니까 아기한테도 좋을 일일 것이다.
다들 한 번쯤 듣는 소리지만, 육아에 정답은 없다. 집집마다 환경이나 형편이 다르다. 누가 이렇게 하더라. 이런 게 참고는 될 수 있지만 무조건 따라가는 게 좋은 건 아니다. 결국은 다들 자기 식대로 자기 환경과 형편에 맞게 하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정답인 것이다. 아이가 생기면 생활이 아이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그런 소리도 많이들 한다. 난 아직 136일밖에 육아 경험이 없지만, 그 말에는 부정하고 싶다.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 부부 생활에 아이 생활이 더해진 것이라고, 둘에서 셋이 된 거라고 생각한다. 셋은 둘과 분명히 달라야 한다. 거기다 추가로 들어온 아기라는 가족 구성원은 아직 세상이 낯설다. 우리 가족이 되어 함께 즐겁게 생활할 수 있는 안내자가 되면 된다. 그 안내자의 역할에 내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나는 결코 바뀌지 않았다. 그저 내 생활에 그러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는 시간이 융합된 것이다. 시간은 한정적이고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에너지도 무한한 것은 아니므로 더해진 것은 아니다. 적당히 내 생활에 스며들었다고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혹시 지금 힘들게 육아를 '견디고' 있다면 밸런스를 유지하도록 해보자. 내 건강도 아이의 건강만큼 중요하다. 정신 건강이든 육체 건강이든 말이다. 내가 없으면 아이는 엄마를 잃는 것이다. 그건 무엇보다도 아이에게 치명타가 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엄마, 아빠들이 한 없는 희생보다는 적당한 타협을 택하고 몸도 마음도 편해지면 좋겠다. 나에게 아이가 소중하듯이 아이에게도 내가 소중하고 절실히 필요한 사람일 테니깐 말이다.
아무튼 처음에 던진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아기가 원할 때까지 같이 자자'이다. 각자 집마다 맞는 답이 있을 것이다. 언제 또 아이가 자라 이 답이 더 이상 답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일단 지금은 같이 자면서 아이가 없을 때 느끼던 자유로움보다는 엄마가 된 기쁨을 더 느끼련다. 전자도 후자도 모두 나에게는 아쉬울 것 없는 큰 기쁨이다. 지금... 컨디션이 괜찮은 상태라 그럴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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