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의 임신 출산기–7

이게 임신/출산기의 마지막 포스팅이 될 것 같다. 병원 갔다올 때마다 블로그를 쓰려고 했는데, 원래도 바빠서 그러지 못했지만 막달이 되니까 몸도 무겁고 신경 쓰고 준비할 것도 많아 블로그를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지금도 아기가 태어난 지 벌써 24일 정도가 흐르고 나니까, 아니 사실 흐른 기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오늘 아기가 좀 잠을 제때 많이 자 주어서 글을 쓸 여유가 생겼다고 하는 게 맞겠다. 요즘 너무 더워서 우리도 힘들고 아기도 힘들어서 너무 찡찡대는 바람에 밤 시간 빼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이번 주에는 한 번 공원에 나가 그늘에서 조금 휴식을 취했는데, 바깥 그늘이 집보다 훨씬 시원했다. 집안은 바람 방향에 따라 바람이 안 들어오면 진짜 엄청 덥다.

어쨌든 오늘은 대략 한 달 가량이 지나 조금 가물가물해진 대망의 출산기를 끄적여 보려고 한다. 사실 이번이 내게는 첫 임신이자 출산이라 조금 두려운 마음도 컸는데,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먼저 출산을 경험한 다른 블로거들의 글을 찾아보곤 했다. 특히 독일에서 출산하신 분들의 글을 많이 검색해 봤다. 대체적으로 그렇게 나쁜 평(?)의 글은 없어서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마음으로 막달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40주가 지나도 아기가 나올 생각을 안 하는 것이다. 그렇게 40주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고 나흘째 되는 날 밤에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갑자기 밑에서 물이 주르륵 흐르는 것이다… 이게 뭐지..? 하고 있는데 이거 혹시 양수 터진 건가?… 라는 생각이 들어 재빨리 남편을 불렀는데, 남편이 더 당황하심. 병원에 바로 가야 할 것 같은데 확신이 없어서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그러니까 엄마가 아직 나오진 않을 거 같은데 병원에 전화를 한 번 해 보고 가라고 하는데, 독일말을 못하니 전화하기 두렵… 그냥 병원에 가 보기로 했다. 밤 10시에 택시를 잡았다. 남편이랑 같이 출산 가방을 갖고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그런데 남편은 바로 들어올 수가 없단다. 왜죠? 이놈의 코로나…

결국 양수 터진 채로 나 혼자 인포에 가서 안내를 받고 분만병동으로 향했다. 거기서 헤바메(당시에는 헤바메인 줄 몰랐고 분만병동 의사인 줄 알았다. 영어를 잘하셔서. 근데 지나고 보니 간호사들은 영어를 잘 못하고 오히려 헤바메들은 거의 영어를 할 줄 알았다.) 한 분에게 양수가 나오는 것 같아서 왔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Binden(생리대) 큰 걸 주면서 화장실 가서 차라고 하면서 소변 검사도 같이 하라고 했다. 그렇게 소변 검사를 하고 태동 검사를 한 번 한 다음에 이상이 없다고 말하면서 마지막으로 초음파 검사를 하라고 했다. 그래서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나랑 비슷한 시간에 온 산모 한 분이랑 수다를 떨었다. 그분은 태동이 많이 안 느껴져서 왔다고 했다. 37주차라고 하면서… 그러다가 내 차례가 되어서 초음파를 보고 별 이상 없다고 해서 일단 오늘 병실에서 자라고 하면서 입원을 시켜 줬다.

입원실 병동은 분만병동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분만병동에서 복도 끝으로 가 왼쪽으로 꺾으면 또 복도가 하나 길게 나오는데 거기가 산모들 전용 병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거기 가운데에는 간호사실도 있었다. 거기에 가서 나이트 시프트 중인 간호사에게 나 입원하러 왔다면서 헤바메가 준 서류(?)를 주니까 방번호를 알려주면서 아침, 점심, 저녁으로 뭐 먹을지 고를 수 있다면서 메뉴판(?) 같은 걸 줬다. 내가 그러는 동안 남편은 코로나 19 때문에 함께 병원에 있을 수 없어서 (사실 패밀리룸 예약도 다 차서 일반 병실밖에 없었기 때문에 밤에는 어차피 같이 있을 수가 없었다.) 그 시각에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새벽 1시즈음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안내를 받고 병실에 들어가 누워서 잠을 청했다. 병원에 입원한 건 처음이어서 다 낯설었는데, 금방 적응하는 성격이어서 그날은 푹 잤던 것 같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아침식사를 하고 분만병동으로 넘어오라고 했기 때문에 잘 먹히지 않는 빵으로 식단이 구성된 아침 식사를 부랴부랴 먹고 분만병동으로 향했다. 또 태동검사가 시작됐다. 그러면서 촉진제라면서 알약을 하나 주었다. 보통 한국에서는 촉진제를 주사로 놔 주는 걸로 알고 있는데 여기는 알약으로 주더라. 그러면서 정말 촉진해 주는데 매우 도움이 되는 약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약을 먹고 또 태동검사가 계속되었다. 11시까지 이어졌다. 그러더니 또 병실에 가서 점심을 먹고 2시에 오라고 했다. 그래서 그 말 그대로 점심을 먹고 2시에 다시 갔다. 배가 조금씩 아파왔다. 생리통처럼 아프다고 하던데 내가 느끼기엔 그냥 생리통이었다. 약간 인상 쓰면서 참을 만한 정도의 생리통이었다. 오후에도 촉진제 한 알을 바로 준다고 했는데, 태동검사를 한참 해도 약을 주지 않았다. 끝도 없는 태동검사가 계속되었다. 오후 시프트의 헤바메가 왔다. 통증이 있냐고 해서 좀 있다고 했더니 자궁문이 얼마나 열렸는지 검사를 해 줬다. 1~2cm밖에 열리지 않았다. 절망적이다… 4시쯤이었던가? 헤바메가 와서 또 촉진제를 먹을 건지 아니면 병실로 가서 저녁 먹고 자고 내일 아침에 올 건지 물었다. 나는 혁이랑 생일을 맞추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이 진통을 느끼면서 하루 더 할 자신이 없어서 그냥 오늘 촉진제를 먹고 시도해 보겠다고 그러면서 오늘 못 낳으면 내일 수술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 헤바메가 수술 얘기는 못 알아들었다. 어쨌든 촉진제 한 알을 더 먹고 내가 아프다고 하니까 진통제를 놔 주며 좀 자라고 했다. 자고 있는데 헤바메가 또 날 깨운다. 밤 12시였다. 나보고 아직 자궁문의 충분히 안 열렸으니까 일단 병실로 돌아가고 너무 아파서 잘 수가 없으면 언제든 오라고 말했다. 그때 이미 좀 많이 통증이 느껴져서 진통제를 또 놔 줄 수 있냐고 했는데, 이제 놔줄 수가 없다고 했다. 병실로 돌아가서 배를 부여잡고 다시 잠을 청했다. 그러다 새벽 2시 반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신음소리가 절로 났다. 자려고 노력해봤지만 도저히 안 돼서 배를 부여잡고 또 분만병동으로 향했다. 이 통증이면 4cm 정도는 충분히 열려서 무통주사를 놔 줄 것 같았다. 새벽 시간인데도 기다리는 임산부가 많았다. 너무 아픈데 대기줄에 의자가 없어서 서서 기다렸다. 인고의 시간이었다. 정말 급한 성질 때문에 기다리기 힘들 때는 이때를 생각해야겠다. 내 생에 가장 힘든 기다림이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이 지겨운 태동 검사를 또 하란다. 아파 죽겠는데 내 예상대로 흘러가지가 않는다. 난 가면 바로 얼마나 열렸는지 내진을 하고 4cm 이상이면 무통주사를 놔 줄 줄 알았다. 놉… 또 태동 검사를 하기 위해 누웠다. 1시간 가량이 넘는 인고의 시간… 어느덧 시계는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도저히 신음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고통. 그럼에도 내 옆에는 아무도 없다. 이놈의 코로나 때문에 남편이 분만할 때가 되지 않으면 병원에 올 수가 없다. 2시간 가량을 신음하면서 버텼다. 중간중간 너무 아파서 헤바메를 3번이나 콜했다. 남 귀찮게 하고 민폐 끼치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웬만하면 보통 호출을 자제하는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알기라도 해야 버틸 수 있을 고통이었다. 3번째 호출했을 때 헤바메가 곧 마취과 의사가 내려올 거라고 일러주며 많이 아프냐고 좀만 버티라고 위로해주었다. 그전까지는 진짜 옆에 아무도 없고 아무도 관심을 안 가져주니까 이거 인종차별 하는 건가 하는 근거 없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오전 4시 30분 헤바메가 나를 분만실로 안내했다. 30분만 더 기다리라고 했다. 30분 뒤에 드디어 마취과 의사 두 명이 내려왔다. 아니 한 명은 간호사였을 것이다. 그러고 앉으라고 하며 무통주사를 놔 주었다. 나는 무통주사 맞는 게 글케 힘들었다. 평소에도 생각해보니 허리가 썩 좋지 않아 머리를 앞으로 내려 못 감고 샤워하면서 감곤 한다. 그런데 허리를 둥글게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그게 너무 허리가 아팠다. 그냥 내 허리에는 근육이 없는 듯하다. 다음에 혹시 둘째를 낳게 되면 살도 빼고 이때를 대비해서 허리 강화 운동도 열심히해야겠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주사를 맞고 나니 천국이 시작됐다. 말 그대로 무통천국이었다. 정말 고통이 1도 없이 사라졌다. 나이트 시프트 헤바메가 좀 자 두라고 하며 분만실을 나갔다.

좀 자고 눈을 떠 보니 아침 시프트 헤바메가 들어왔다. 아주 친절하게 이것저것 설명해 주면서 5cm 정도 열렸고 불편한 게 있으면 호출하라고 하면서 이제 남편을 불러도 된다고 했다.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난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이제 병원에 와도 되니까 빨리 오라고. 40분쯤 뒤에 남편이 도착했다. 그 전까지는 사진 찍을 틈도 없었고… 남편이 와서 분만실 사진만 좀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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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겹게 누워 있는 내 모습… 지금 멀쩡할 때 생각해보니까 진짜 저때 정상이 아니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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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구석에는 아이가 태어나면 몸무게와 길이를 잴 도구들이 구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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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진 못했지만 애기가 나오면 이 용품들로 닦이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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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바로… 무통주사… 날 구원해준 고마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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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지긋한 태동검사기. 지금보니 내가 종이 낭비를 정말 심히 했군. 48시간이 넘도록 태동검사를 몇 차례를 했으니 말이다.

남편이 아침 9시인가 10시쯤에 도착했다. 내가 밥 먹고 오라고 그리 일렀건만 밥도 안 먹고 달려왔다. 점심시간이 지나 또 2시에 헤바메가 바뀔 때까지 나의 자궁문은 소식이 없었다. 저녁 6시가 되어서야 9.5cm까지 열렸다. 우리 남편은 쫄쫄 굶고 있었다. 오랜 기다림에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남편은 분만병동에 있는 탕비실 과자를 축내고 있었다. 헤바메가 7시에 와서 힘주는 법을 알려주면서 배에 느낌이 올 때마다, 그러니까 무통을 놔서 통증은 없었지만 진통이 올 때마다, 힘주는 법을 알려줬다. 8시까지 혼자 연습을 하라고 얘기했다. 8시에 의사와 와서 같이 해 보자고 했다. 이틀 전부터 아기가 태어나기를 기다려 기다림에 엄청나게 지쳐 있던 나는 정말 열심히 힘주기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굶고 있어 남편이 안쓰러웠던 것도 한 몫했다. 하지만 8시까지 아기는 나올 생각을 안 했고, 결국 헤바메와 의사가 들어왔다. 헤바메와 힘을 합쳐 열심히 힘을 주었다. 의사가 배를 눌러 밀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의사는 흡입분만(Vacuum extractor)을 해야 한다고 나에게 설명을 했다. 이런 방식은 금시초문이었지만 의사가 알아서 하겠거니 했다. 하긴 내가 그 상황에서 무슨 선택 사항이 있었겠나. 결국 나도 열심히 힘 주고 헤바메는 배를 밀고 의사는 흡입기를 써서 3명이서 힘쓴 결과 흡입기 시도 한 번 만에 봉봉이가 태어났다. 찾아보니 4번 넘게 시도하면 아기에게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한다(참고글: https://brunch.co.kr/@resonancelaw/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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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봉봉이가 드디어 태어났다. 정말 오랜 기다림이었다. 40주 6일 만에 세상의 빛을 본 우리 아기. 아기를 처음 안아본 느낌은… ‘왜 이렇게 못생겼지? 근데 나랑 똑같이 생긴 듯’

양수에 불어 얼굴이 퉁퉁 부은데다가 흡입기를 써서 머리는 콘헤드가 되어 있었다. 뭐 다음날부터 미모를 뽐내 주셨지만 처음 나왔을 때는 그랬다. ㅋㅋㅋ

어쨌든 고생 끝에 아기를 안아 막 감격이 올라오려고 하는 찰나 이 감정을 공유하고 싶어 남편을 쳐다봤는데 아기를 째려보면서 “나올라면 곱게 나올 것이지.”라며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기억이 안 난다고… 열심히 힘주는 나를 보는 게 힘들었나 보다. 어쨌든 그래도 남편의 사랑이 느껴져서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웃기면서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지금 벌써 6주차가 되었는데, 6주 만에 살도 많이 찌고 예뻐졌다. 기회가 될 때마다 블로그에도 육아일기(?)를 기록해 봐야겠다.

그럼 이만 기나긴 출산기를 마무리해야겠다. 우리 셋 즐겁고 신 나게 잘 지내보자. 세상에 태어난 걸 환영해. 우리 아가. ♥

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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